당신만의 공간은 어디인가요?

“도시, 재미있지 않나요? 도시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일과 복잡한 관계는 저를 즐겁게도, 힘들게도 하면서 여러 자극을 주거든요. 공해는 싫지만요.(웃음)”
많은 이가 도시를 떠나 전원에서 안식을 찾고 싶어 하는 이 시대에 유현준 건축가는 도시를 향한 애틋한 마음을 숨기지 않는다. 최근 출간한 첫 번째 에세이 <당신의 별자리는 무엇인가요>(와이즈 베리)에서는 자신을 성장시킨 도시의 공간과 순간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기도 했다. ‘당신이 지하철이든 사무실이든 어디에 있을지라도 자신만의 공간과 가치를 찾으라’고 말이다. 갈수록 나를 위한 집 한 칸 마련하기 어려운 이 시대에 ‘나의 공간을 꼭 찾아야 하는가’란 물음에 유현준 건축가는 주저 없이 ‘그렇다’라고 답했다.
“나만의 가치를 찾는 연습을 꾸준히 하면 스스로의 삶도 나아지지 않을까요.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은 음식이든 옷이든 다양한 매개체로 내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저는 아무리 하찮은 공간이라도 저만의 가치를 찾았을 때, 보석을 발견한 느낌이 들어요.”

끝없는 도전과 성취의 이면

유현준 건축가의 타이틀은 도시와 건물을 인문학적 관점으로 읽어내는 ‘인문건축학자’ 외에도 여러 개다. 국내외 유수의 건축상을 수상한 유현준건축사사무소 대표 건축가이자 홍익대 건축과 교수, 베스트셀러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을유문화사)의 저자이면서 tvN <알쓸신잡 2>에서는 잡학박사로 활약했다. 현재 경계 없는 활약을 펼치고 있는 그의 유년시절은 어땠을까.
어머니가 미술학원을 운영했던 덕에 화실에서 그림 보기를 좋아했던 유현준 건축가는 스스로를 ‘착하면서도 예민했던 아이’라고 회상했다. 선생님 말씀을 잘 듣는 전형적인 모범생이자 혼자 사색에 몰두하는 시간을 즐겼다고.
“거친 성격이 아니라서 사춘기, 청년기를 보낼 때 친구들과 교우관계를 맺는 데 어렵기도 했어요. 친구들이 당구장을 가거나 술, 담배를 하는 걸 저는 받아들이기 어려웠어요. 재미있죠? 저는 도시를 좋아하면서도 사람들과 부대끼는 건 싫어해요. 적당한 거리를 두고 사생활을 존중받으면서 다른 사람을 관찰하는 걸 좋아하죠.”
물리, 미술, 지리, 지구과학을 좋아했던 유현준 건축가는 이 네 과목이 어우러진 건축학과에 진학해 건축가로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닦는다. 이어 MIT와 하버드에서 대학원 과정을 마쳤고, 세계 여러 도시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그의 삶은 끝없는 도전과 성취의 연속으로 보였다. 하지만 유현준 건축가는 <당신의 별자리는 무엇인가요>(와이즈베리)에서 다소 의외의 속내를 털어놓았다. ‘인생이 계획한 대로 된 적이 한 번도 없다’라고 말이다.
“많은 분이 제가 인생의 실패를 모르고 많은 것을 성취했다고 오해하세요. 하지만 실제로 무척 원했지만 이루지 못한 것이 훨씬 많습니다. 저 역시 인생에서 만족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아 스트레스를 받아요. 겉은 대단해 보이더라도 속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말씀드리면서 다른 사람들을 위로해드리고 싶었어요.”

서양의 기하학적인 공간구성과 동양에서 사용했던 공간 배치의 가변성을 하나의 건축물에 담아낸 ‘머그학동’ - 사진제공 : 유현준건축사사무소

“건축가의 창의력이 발휘되기까지
현실적으로 넘어야 할 산이 많아요.
건축주, 공무원, 공사비용 등
기존의 건축에 대한 고정관념을
하나하나 다 바꿔야 하니,
때로는 건물을 지으면서 사회와
싸운다는 느낌이 들 정도예요.”

서양의 기하학적인 공간구성과 동양에서 사용했던 공간 배치의 가변성을 하나의 건축물에 담아낸 ‘머그학동’ - 사진제공 : 유현준건축사사무소

갈등을 해소하고 사람들을 연결하는 건축

자고 나면 새로운 건물이 등장하는 도시는 정해진 설계도에 따라 정해진 방법으로 짓는 것 같지만, 유현준 건축가의 말에 따르면 “건축은 매순간이 도전”이다. 흔히들 건축은 창의적인 영역이라고 말하지만 실상은 수많은 사람을 설득하고 현실적인 제약을 해결해야 하는 도전의 영역이다.
“건축가의 창의력이 발휘되기까지 현실적으로 넘어야 할 산이 많아요. 건축주, 공무원, 공사비용 등 기존의 건축에 대한 고정관념을 하나하나 다 바꿔야 하니, 때로는 건물을 지으면서 사회와 싸운다는 느낌이 들 정도예요.”
그럼에도 유현준 건축가가 끝까지 싸워 만들어내고자 하는 공간이 있다. 바로 모든 국민이 12년 동안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학교’다. 현재 학교의 평당 공사비는 약 550만 원으로, 교도소와 시청, 하물며 격납고보다 공사비가 저렴하다. 인간의 삶에서 제일 중요한 ‘인격형성기’를 지나는 청소년들을 열악한 건물에서 지내게 하면서 우리 사회의 미래라고 말해도 되는 것일까.
“저는 대한민국의 모든 학교는 어느 부잣집보다도 번듯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모든 국민의 집을 최고로 만들 수는 없지만 좋은 학교를 지으면 모든 국민이 12년 동안 제일 좋은 건물에서 학창 시절을 보낼 수 있으니까요. 아이들이 아침에 등교해서 해질 때까지 시간을 보내는 학교가 가기 싫은 곳이 아닌 행복한 공간이 됐으면 좋겠어요.”

아내의 건강을 위해 경치와 기(氣)가 좋은 집을 짓고 싶다는 건축주의 의견을 반영, 풍수지리학을 고려해 지은 ‘쌍달리 주택’ - 사진제공 : 유현준건축사사무소

유현준 건축가가 꿈꾸는 미래의 건축

유현준 건축가의 꿈은 한 번 더 확장된다.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게 서로를 존중하면서 즐거운 추억을 공유하는 사회가 그것. 그래서일까. 그는 건축가의 의무를 ‘부자든 빈자든 누구나 누릴 수 있는 포켓파크(Pocket Park, 소공원)를 가장 훌륭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유현준 건축가가 꿈꾸는 미래의 건축이 나아가야 할 지점이다.
“다양성을 경험하지 못한다면 다른 이의 생각을 틀렸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됩니다. 다름에 대해서 비난하지 않고, 다른 이의 생각이 맞을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사회가 되면 좋겠어요.”
모두가 행복한 공간을 짓기 위해 고민하는 건축가. 그에게 건축은 그 자체가 사회를 향한 도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