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 없는 디자인 회사,
오픈 이노베이션으로 명품을 만들다

디자이너가 없는 디자인 회사가 있다. 이탈리아의 디자인 생활용품 브렌드 알레시가 그 주인공. 알레시는 1921년 지오반니 알레시가 창업한 금속 주방용품 가내 수공업체가 시작이었다. 이후 장인정신과 예술성, 상품 디자인을 더해 세계적인 생활용품 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리고 1970년대에 들어 알레시의 3대손인 알베르토 알레시가 세계적인 디자이너들과 오픈 이노베이션을 통해 예술성을 띤 감성적인 디자인 제품을 선보이며 세계적인 명품기업으로 거듭났다. 알베르토 알레시는 “최고의 제품을 찾는다면 더 큰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아라”는 말을 남기며 오픈 이노베이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실제 알레시는 글로벌 기업의 모범 ‘협업’ 사례로 손꼽히는데,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는 ‘디자인 개념을 초월한 협업 과정이 혁신의 원동력’이라고 평가했다.
놀라운 것은 이 회사에 근무 중인 직원 중 디자이너가 한 명도 없다는 사실. 알레시는 1950년대 사내에 근무하는 전속 디자이너 개념을 없애고, 패션·리빙·인테리어 등 분야를 구분하지 않고 각국의 디자이너들과 협업 시스템을 구축했다. 여기에는 알레시의 제품 개발 철학이 녹아 있는데, 바로 ‘시장의 유행을 따르지 않고 새로운 디자인을 창조함으로써 시장의 트렌드를 바꿔나가자’는 것이다. 알레시는 신제품을 개발할 때 유행을 고려하거나 시장의 트렌드를 조사하지 않는다. 그래야 디자이너와 함께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는 혁신적인 상품을 만들 수가 있기 때문. 알레시는 이러한 과정을 걸쳐 개발한 제품명에 협업을 진행한 디자이너 이름을 공동으로 올렸고, 상품 판매량에 따라 로열티까지 지불했다. 알레시의 대표 제품들이 대부분 이 과정에서 만들어졌는데, 세계적인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인 알레산드로 멘디니가 디자인한 와인오프너 ‘안나 G(Anna G)’, 최고의 산업디자이너로 불리는 필립 스탁이 디자인한 오렌지즙 짜개 ‘주시 살리프’ 등이 그것이다.

오픈 이노베이션의 힘을 증명한
바둑 잘하는 인공지능

지난 2016년 3월, 세기의 대결이 우리 땅에서 벌어졌다. 바로 알파고(Alphago, 구글 딥마인드의 인공지능 바둑프로그램)와 이세돌 9단의 대국이 그것. ‘인공지능이 인간을 이길 수 있을 것인가?’에 세상은 주목했고, 결국 다섯 번의 대국에서 알파고가 4대 1로 승리했다. 이 사건은 ‘알파고 쇼크’라는 신조어까지 만들며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그런데 이 세기의 대결이 오픈 이노베이션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알파고를 개발한 딥마인드는 2010년 영국에서 데미스 하사비스 최고 경영자와 셰인 레그, 무스타파 술레이만 세 명이 창업한 회사다. 당시 사명은 ‘딥마인드 테크놀러지’였고, 구글이 인수하면서 ‘구글 딥마인드’로 바뀌었다.
오픈 이노베이션의 필요충분조건은 혁신적인 아이디어나 기술력을 가진 스타트업과의 개방과 공유. 딥마인드가 개발 중인 바둑 인공지능 프로그램에 주목한 구글은 일찌감치 가능성을 파악하고 4억 달러(약 4,800억 원)라는 큰돈을 투자했다. 당시 딥마인드는 3년 정도 된 신생기업이었음을 감안하면 파격적인 조건임은 분명하다. 참신한 아이디어를 보유한 스타트업과 미래 지향적 플랫폼의 개척자 구글이 만든 결과는 상상 이상이었다. 딥마인드는 구글 인공지능 기술 발전의 1등 공신 역할을 톡톡히 해냈을 뿐만 아니라 ‘인간과 인공지능의 대결’이라는 인류 역사상 초유의 이벤트를 연출해냈다. 알파고 쇼크가 시작된 후 구글은 기다렸다는 듯 자체 머신러닝 텐서플로우를 오픈소스로 풀었고, 알파고 쇼크를 목격한 기존 개발자들은 자연스럽게 텐서 플로우에 합류했다. 결국 구글은 알파고의 강점을 어필해 인공지능이 ‘인간에게 열세일 것’이라는 대중의 예측을 부수며 신선함을 안겨줬고, 이를 계기로 구글의 인공지능 생태계를 더욱 견고하게 만들었다.

오픈 R&D로 새로운
개방형 혁신을 주도하다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 입장에서 오픈 이노베이션은 쉬운 결정이 아니다. 도입 과정에 여러 변수가 많고, 애로가 있기 때문. 또한 보유한 신기술이나 특허를 외부와 공유하면 경쟁사에 따라 잡힐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때문에 폐쇄적인 조직문화를 가진 기업일수록 꺼리게 된다. 해외보다 국내 기업이 오픈 이노베이션 활용에서 더딘 이유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나라 전력·자동화기기와 스마트에너지 산업 대표 기업인 LS산전의 신기술 개발을 향한 오픈 이노베이션 사례는 주목할 만하다. LS산전은 R&D가 기업 경쟁력의 핵심임을 인지하여 지속가능한 경쟁 우위를 확보하고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R&D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매년 매출액의 약 6%를 연구개발에 투자해 차세대 제품 개발, 신사업을 위한 제품 및 기술 개발, 핵심 기초기술 개발 등에 집중하고 있는 것. 각국의 연구기관과 오픈 R&D를 통해 개방형 혁신을 주도하는 것도 그 일환이다. 일례로 한국전기연구원과는 공동연구센터를 설립해 세계 일류화 기술 확보를 위한 공동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연구소와 기업이 공동으로 연구하고 협력하는 사례는 다소 있지만, 공동으로 출자해 연구소를 설립해 협력하는 체제는 흔치 않다. 또한 한국전력공사 전력연구원과 에너지 신산업 분야 핵심기술확보와 시장 선점을 위해 전략적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세계의 다양한 연구기관과의 협업도 진행한다. 인도, 이스라엘 등 해외 우수 기관들과의 교류 및 협력을 통해 LS산전의 연구개발 활동에 필요한 기술력을 도입하고 있는 것. 오픈 R&D를 통해 개방형 혁신을 주도하는 LS산전. 열린 생각과 열린 마음으로 만들어가는 그들의 신기술이 우리의 삶을 어떻게 바꿔놓을지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