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과학과 상상력은 상극일까?
오랫동안 상상력은 예술과 문학의 영역에서만 유효했을 뿐 과학의 영역이 아니었다. 17세기 영국 과학혁명의 시조라 불리는 프랜시스 베이컨도 ‘과학은 실험을 통해 사실을 발견하고 이러한 사실의 토대 위에 일반적인 원칙들을 발전시킨다’고 주장했다. 오히려 상상력 때문에 지적인 비약과 오류가 생겨난다고도 했다. 과학에서 상상력이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인식이 그대로 드러나는 말이다. 비슷한 시대의 철학자였던 헨리 모어도 ‘상상력이란 새로운 과학이 아니어야 할 모든 것’이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상상력은 과학과는 상극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과학의 역사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이 지식의 축적에 의해 진보한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뉴턴의 역학이 발전하여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낳은 것이 아니다. 이 두 이론이 갖는 과학적 인식의 토대는 완전히 상이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이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서로의 간극을 메꾸는 ‘상상력’ 덕분이었다.
19세기 중후반에 접어들면서 과학기술에 낙관적인 상상력이 더해져 이른바 ‘과학 낙관주의’가 유행하기도 했다. 특히 쥘 베른의 소설은 21세기의 모습을 소름 끼칠 정도로 정확하게 예언하고 있다. 1865년에 완성한 <지구에서 달까지>에서는 비행기도 없던 시절에 벌써 우주선을 상상했다. 우주여행 외에도 그의 소설 속에는 잠수함, 입체영상, 해상도시, 텔레비전, 투명인간의 개념이 최초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상력은 기술개발의 원동력이자 미래의 기술에 영감을 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세기 후반의 물리학자 존 틴달도 ‘상상력이 과학자들에게 강력한 무기가 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인류의 역사가 시작되고도 수만 년 동안 정체되어 있던 과학의 역사가 ‘상상초월’의 속도로 진보하게 된 것도 이즈음, 인류가 상상력의 가치에 눈을 뜨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이미 삶 속으로 들어온 ‘상상의 기술
SF 영화는 과학적 상상력이 유감없이 드러나는 장르이다. 불과 십수 년 전만 해도 ‘과연 저런 기술이 실제로 개발될 수 있을까’ 싶었던 것들이 어느새 우리 주변에서 이미 자연스럽게 활용되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1968년 개봉한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태블릿PC가 대표적인 예이다. 1968년은 액정 디스플레이가 처음 개발된 해였는데 그것으로 지금의 태블릿PC와 거의 유사한 형태의 디스플레이 장치가 등장했다는 것만으로도 놀라운 상상력이었다.
2001년에 개봉한 <마이너리티 리포트>도 멀티터치가 가능한 투명 디스플레이, 자율주행차, 망막스캔 인식기술, 보행자 맞춤형 광고 등 당시로서는 기발한 상상력으로 가득한 영화였다. 이러한 기술들은 실제로도 지속적인 연구가 이루어지면서 지금은 낯설지 않은 기술이 되었다. 특히 홍채인식 기술은 이미 생활화되어 홍채인식이 적용된 스마트폰도 출시될 만큼 일상화되었다. 2013년에 개봉한 <설국열차>에서 송강호가 쓰던 신박한 실시간 통역기도 이미 현실화되었다. 어벤저스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히어로로 손꼽히는 아이언맨의 강력한 하이테크 슈트도 ‘웨어러블 로봇’이라는 이름으로 점차 현실화되고 있다.
상상력은 언제나 더 나은 미래를 그린다
현대 물리학에 혁명을 가져온 아인슈타인도 “지식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상상력이다”라고 상상력을 찬양했다. 왜냐하면 지식은 우리가 알고 있고 이해하고 있는 것에만 국한된 반면, 상상력은 앞으로 알려지고 이해해야 할 모든 세계를 포용하기 때문이다. 기술의 발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상상력은 언제나 현재보다 나은 미래를 그려내고 그 미래로 갈 수 있도록 현실을 이끌어왔다. 하늘을 나는 자동차, 우주의 놀이터, 해저도시에 이르기까지 이제 인간의 상상력으로 끌어낼 수 있는 것들은 거의 다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이런 말도 성급한 결론이다. 무엇을 상상하든 늘 그 이상의 것들이 실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상상력은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상상력에 더해진 ‘연결’의 힘 덕분이다. 스티브 잡스는 ‘창의적인 것은 연결에서 나온다’는 말을 남겼다.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은 아이폰은 세상에 없던 것이 아니었다. 핸드폰, MP3, 노트북의 기능이 결합된 연결의 총아였다. 없던 것들을 생각해 내는 상상력을 넘어, 세상을 있는 것들을 연결시키는 상상력이 만들어낼 세상의 변화는 짐작하기도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