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쟁이 소년, 디자인을 만나다
바지인지 치마인지 얼핏 구분이 힘들었다. 한복 바지를 자신의 스타일로 재해석해 만들었다는 까만 바지를 입고 나타난 배상민 교수는 아이처럼 천진하게 웃고 있었지만, 그의 첫인상은 바지만큼이나 오묘했다. 애플을 이긴 디자이너, 파슨스 최연소 동양인 교수, 레드닷디자인어워드 컨셉트디자인 부문 대상…. 평생에 하나를 이루기도 쉽지 않은 경력을 대수롭지 않게 거느린 이력과 그 해맑은 미소는 꽤 동떨어져 보였기 때문이다.
제일 먼저 배상민 교수의 어린 시절에 대한 궁금증이 모락모락 솟아올랐다. 그의 유년시절 어디쯤에서 지금의 모습을 만날 수 있을까?
“어릴 적 얘기는 잘 안 하는데… 하하. 저는 청와대 옆 청운동에서 자랐어요. 출입금지 구역이 많았는데 친구들과 몰고 숨어들어가서 가재도 잡고 다람쥐도 쫓으며 놀았죠. 당시 제 롤모델이 허클베리핀이었거든요.”
공부 잘하고 반장, 전교회장까지 했던 모범생이었지만 모험과 탐험의 꿈을 버릴 수 없어 사고도 곧잘 치던 소년의 꿈은 발명가였다. 그는 어머니가 난방비를 아끼느라 쓰지 않았던 2층을 작업실 삼아 늘 뭔가를 뚝딱거리고 분해하고 조립하면서 불까지 냈던 비범함(?)을 자랑하기도 했다. 배상민 교수가 ‘디자이너’라는 꿈을 완전히 각성한 계기는 뉴욕 파슨스 디자인 스쿨에 입학한 뒤였다.
“파슨스는 사진으로 갔어요. 1지망이 사진, 2지망이 패션이었죠. 하루는 카메라를 디자인해서 직접 만들었는데 왠지 처음 하는 것 같지 않더라고요. 왜 이리 익숙하지? 그리고 깨달았어요. ‘아! 어릴 때 집에서 숱하게 분해하며 놀던 게 이거였구나. 이게 디자인이네!’라고요.”
유레카였다. 배상민 교수는 그때 ‘이건 내가 평생 해야 할 일!’임을 깨달았다며 발가벗고 목욕탕을 뛰쳐나온 아르키메데스처럼 발갛게 상기되어 웃었다.
파슨스 디자인 스쿨에서 디자이너로서의 역량은 여지없이 발휘됐다. 미국 산업디자인협회(IDSA) 주관 디자인대회에서 소리를 시각화한 오디오시스템 ‘사운드펌프’로 전미 1위를 차지하면서 전 세계 디자인 회사 대표에게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켰고, 졸업과 동시에 스마트디자인사에 입사를 확정지었다. 더불어 파슨스 디자인 스쿨 교수로 임명이 되었다.
“처음엔 학생들을 가르치는 게 싫었는데 하다 보니 재능이 있더라고요. 학생 수는 계속 늘어났고, 소명의식이 생겼어요. 각국에서 몰려든 학생들이 나중에는 세계 디자인을 이끌고 정책을 만들 텐데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죠.”
창의적 디자인으로 사회공헌을 펼치다
그가 파슨스 디자인 스쿨 교수 자리를 내려놓고, 뉴욕에 차렸던 잘나가는 디자인 회사를 접은 채 한국에 돌아온 이유는 명확했다. 돈이 많은 클라이언트을 위한 일, 끊임없이 소비와 소유욕을 부추기는 디자인에 환멸과 허무를 느꼈기 때문. 그는 그 시절을 ‘행복하지 않았다’라고 천천히 정확하게 발음했다.
늘 가고 싶었던 티벳과 닮은, 고요한 대전의 카이스트로 옮기고 적응하며 지내던 어느 날, 배상민 교수는 운명처럼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월드비전이었다. 나눔과 관련해 뭔가를 해보고 싶다는 어느 간사의 전화를 받은 뒤 그는 직접 나서서 상품을 만들어 판매금액 전액을 기부해보자는 제안을 했다. 그렇게 나온 게 큐브형 접이식 MP3. 애플의 아이팟을 이기고 세계 3대 디자인상인 IDEA에서 은상을 수상한 작품이었다.
이후 그의 행보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졌다. 나눔 프로젝트, 씨드(SEED) 프로젝트 그리고 기업·지자체·정부 등과의 사회공헌사업이 그것. 오염된 물을 1급수로 만들어주는 정수기, 모기퇴치 스프레이, 태양열 전등 등이 씨드 프로젝트를 통해 아프리카 주민들을 살리고 있고, 나눔 분야에서는 자연가습기 러브팟, 하티 텀블러 등이 판매 수익금 전액을 기부하고 있다. 사회공헌사업으로는 SKT와 함께한 ‘박스쿨(Boxchool)’이 세계 3대 디자인상인 '레드닷어워드' 디자인 콘셉트 부문에서 대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디자인으로 세상에 도움을 주는 일을 하게 된 그는 비로소 행복을 느끼기 시작했다.
배상민 교수의 독특한 디자인의 원천이자 영감이 되어준 20살 때부터 써온 일기장.
“협업의 가장 중요한 조건은 구성원 모두가
자기 일에 전문가여야 해요.
‘내 분야는 내가 맡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
내 얘기만 들으면 돼’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죠.”
친환경가습기 러브팟. 전기를 쓰지 않는 제품으로 자연 증발 효과를 이용해 수분을 공기 중에 퍼뜨린다.
협업의 필요충분조건, 전문가가 되라 그리고 존중하라
가치 있는 디자인을 하고 싶다는 배상민 교수의 꿈이 차곡차곡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질문을 하나 던졌다. 그가 가진 선한 영향력이 점점 확장될수록 협업과 팀워크 역시 무엇보다 중요한 작업 요소가 될 터다. 그는 실제로 수상 소감으로 ‘디자인은 협업이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열린 생각과 마음으로 의견을 나눌 때 전에 없던 새로움이 나와요. 사람들이 모여 아이디어를 낼 때 굳은 생각으로 의견을 나눈다면 새로움을 만들 수 없죠. 새로운 프로젝트를 할 때는 오직 그 문제만 생각하고 고민할 시간이 필요해요. 저는 팀원을 밖으로 내보내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주는데, 그 뒤 다시 모이면 그전까지 나오지 않았던 새로운 아이디어가 쏟아져 나와요. 리더는 그 자리에서 누군가 말도 안 되는 얘기를 해도 긍정적으로 반응해주어야 하죠. 팀원이 어떤 아이디어든 편하게 말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게 리더의 첫 번째 역할이에요.”
배상민 교수는 여기에 덧붙여 성공적인 협업을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협업의 가장 중요한 조건은 구성원 모두가 자기 일에 전문가여야 해요. ‘내 분야는 내가 맡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 내 얘기만 들으면 돼’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죠. 두 번째는 내가 고수인 만큼 상대도 고수니까 존중하고 철저히 믿어야 한다는 거예요. 믿음이 안 가면 계속 딴지를 거는 상황이 발생하고 결국 협업은 실패할 수밖에 없어요.”
그는 이야기 끝에 요즘 유행하는 융합형 인간에 대한 강한 경계심을 드러내며 넓게 알기 전에 자기 분야를 제대로 깊게 아는 것에 대한 중요함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디자이너의 꿈
배상민 교수는 두 가지 꿈을 꾼다. 첫 번째는 아프리카에 디자인학교를 세워 카이스트 학생들이 현지의 재료로 정수기, 모기퇴치제 등을 만들어 현지인들에게 가르칠 수 있게 되기를 바라고 있다. 두 번째는 대전이 전 세계에서 나눔디자인, 사회공헌 디자인을 가장 잘하는 공간이 되는 것이다.
“제가 20대 때 최고의 디자인을 배우러 뉴욕에 간 것처럼 다른 이들이 대전으로 오길 바라요. 다행스럽게 그런 일이 지금 일어나고 있죠. 이탈리아, 미국, 영국 등 디자인 선진국에서 카이스트로 유학을 오고 있어요. 이곳에 나눔디자인센터를 만들어 마음은 있는데 시간이 안 되고, 여건이 안 되는 디자이너들이 찾아와 나눔디자인을 연구하고 함께 힘을 합쳐 상품을 만들 수 있다면 더없이 좋을 것 같아요.”
물질과 부를 좇는 이 시대, 물질과 부의 정점에서 자신이 누리던 모든 것을 버리고 많은 이의 생존과 행복을 위한 디자인에 삶의 목적을 두고 살아가는 배상민 교수. 화려한 경력 뒤에 감춰진 그의 심성과 가치관이 드러나자 처음 느꼈던 인상의 부조화가 해소된다. 그것은 명성보다, 돈보다 더 강한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디자이너’가 지을 수 있는 맑고 거침없는 미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