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오롯이 책 숲을 걷다

우리나라 출판산업의 메카라 불리는 파주출판도시에 가면 볼거리, 체험 거리가 참 많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서울 사람’이지만, 가까이에 이런 좋은 문화 환경이 있는 줄 몰랐다는 허형범·박현욱 부부. 책을 가까이하는 편은 아니었다고 솔직히 고백하면서 오늘은 아들 주성이와 책 구경을 실컷 할 생각이란다.
그 바람을 담아 가족이 찾은 곳은 열린문화공간 ‘지혜의숲’. 총 3관으로 이루어진 이곳에 들어서면 누구나 거대한 책장에 압도당해 절로 감탄이 흘러나온다. 아빠 키보다 훨씬 큰 책꽂이에 꽂힌 책들을 둘러보던 7살 주성이보다 더 호기심 어린 엄마, 아빠는 “여기 있는 책을 다 읽으려면 평생 읽어도 부족할걸?”, “여기 머물러 있는 것만으로도 뭔가 얻어갈 수 있을 것 같다”며 설레는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독서 중인 사람들에게 방해될까 낮은 목소리로 아들과 조용조용 대화를 나누던 부부는 수많은 책 속에 파묻혀 있으니 뭔가 의미 있는 문화생활을 즐기는 것 같아 뿌듯하다며 웃었다.
“아이의 독서 습관은 부모로부터 비롯된다고 하는데, 주성이에게 책 한 번 제대로 읽어주지 못했던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그동안 주성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일은 아내가 했는데 이참에 저도 좀 바뀌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주성이가 책과 함께한 오늘을 오래 기억하면 좋겠다는 허형범 사우의 말에 부인 박현욱 씨는 “가족 여행으로 파주에 오길 잘했다”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험하고 거친 세상에서
온전히 내 편이 되어주고
격려와 위로를
아끼지 않는
고맙고 소중한 가족.”

동갑내기 친구에서 부부로

올해로 결혼 8년차를 맞는 부부. 두 사람은 이십 대 청춘 시절에 만나 8년을 친구로 지내다 결혼에 골인했다.
“서로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 단점이 되지 않을까 하는 주위 사람의 염려도 많았는데 오히려 그게 장점으로 작용하더라고요. 서로를 잘 아니까 더 이해하고, 의견 충돌이 생길 때도 기다려주고요.”
전생에 억만 겁의 스침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부부의 연은 친구였던 두 사람을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이로 만들었다.
주 52시간 근무가 시행되면서 달라진 풍경 중에 하나는 허형범 사우가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는 점이다. 바쁘다는 변명으로, 피곤하다는 핑계로 미루던 가족 여행도 자주 하고, 틈나는 대로 아들 주성이와 놀아주는 시간을 갖는다고.
“남편은 일이 바쁘다 보니 육아는 전적으로 제가 담당했는데 요즘은 가사도 도와주고 주성이와 자주 놀아줘요.”
곧 둘째가 태어날 예정이어서 남편의 이런 변화가 다행스럽고 고맙다는 박현욱 씨는 무엇보다 ‘엄마 바라기’였던 아들이 이제는 아빠와 노는 시간을 기다릴 정도여서 한 시름 놓았다며 웃는다.
청주사업장 2공장 변압기 조립공정에서 생산·품질을 담당하는 허형범 사우는 팀 선배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일 잘하는 믿음직한 후배로 통한다. 변압기 생산 업무 중에서도 품질에 큰 영향을 주는 대용량변압기, 태양광변압기 등 특수기종을 전담하는 만큼 매 순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지만, 보람 또한 크다는 것이 허형범 사우의 자부심. 그는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또 사람들과 만나는 것을 좋아해 크고 작은 모임이 많았다. 하지만 이제 곧 둘째 아들 ‘나시’가 새 가족으로 합류하는 만큼 가장으로서도 더 책임감을 가지겠다고 다짐했다.

“제가 생각하는 리프레시는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니에요.
위로가 필요한 아내, 아빠와의
시간을 보내고 싶은 주성이에게
친구가 되어주는 것,
이를 통해 제가 힘을 얻는다면
이보다 더 멋진 재충전은
없지 않을까요?”

가족은 존재만으로도 리프레시가 되는 존재

허형범 사우 가족이 청주로 이사 온 지는 3년 남짓. 회사 일이 바쁜 남편에게도 가사와 육아를 전담하는 아내에게도 잠시 쉬어갈 여유가 필요했다.
“전업주부라고 하면 아직도 집에서 노는데 뭐가 힘드냐고 말하는 분들이 있는데, 해도 해도 끝이 나지 않는 일이다 보니 지칠 때가 있어요. 그럴 때는 친구라도 만나 스트레스를 풀고 싶은데 청주에 홀로 떨어져 지내니 외로움을 느낄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 아내의 속마음을 알아차린 허형범 사우는 미안함과 고마운 마음을 담아 이색적인 장소에서 하루를 보내는 특별한 ‘만삭 여행’을 계획했다. 서로에게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곳으로의 여행이 그것. 오늘 가족이 묵을 숙소는 종이의 고향이라는 뜻을 품은 ‘지지향(紙之鄕)’으로, 이름에 걸맞게 목재 인테리어가 돋보이고 아름다운 서가와 고서로 가득하다. 여느 숙소와 달리 텔레비전이 없어 고즈넉한 분위기는 허형범 사우가 꿈꾸는 가족만의 시간을 보내기에 안성맞춤인 공간으로 보였다.
“사방이 온통 책으로 둘러싸여 책 향기가 고스란히 전달되는 것 같아 태교에도 정말 좋을 것 같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리프레시는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니에요. 위로가 필요한 아내, 아빠와의 시간을 보내고 싶은 주성이에게 친구가 되어주는 것, 이를 통해 제가 힘을 얻는다면 이보다 더 멋진 재충전은 없지 않을까요?”
험하고 거친 세상에서 온전히 내 편이 되어주고 또 격려와 위로를 아끼지 않는 고맙고 소중한 사람들. 그런 든든한 ‘백’이 있기에 힘들고 지칠 때마다 세상의 모든 아버지는 힘을 얻는다. 가족이라는 이름의 행복 충전소를 통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