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나를 만나다

이종범 작가를 만난 곳은 이제 막 방학을 시작한 대학 캠퍼스였다. 얼굴에 화염방사기를 쐬는 듯한 뜨거운 열기 속에서 고양이들은 아주 느리게 그늘을 찾아다니고 있었고 조용한 학교 전체를 촘촘히 메우고 있는 여름 특유의 냄새는 꽤나 매력적인 것이었다.
똑똑, 연구실 문을 두들기자 반바지와 반팔 티셔츠를 입은, 쾌활한 ‘청년’처럼 보이는 이종범 작가가 등장했다. 만화, 방송, 강의, 라디오, 에세이 출간 등 대중문화라고 부를 수 있는 거의 모든 분야에서 전방위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그답게 낯선 이에 대한 그 어떤 경계도, 긴장도 없는 자유분방한 모습이다.
“초등학교만 5군데를 다녔어요. 1년에 한 번꼴로 전학을 다닌 셈이었죠. 그 덕분에 제게는 몰려다닐 친구보다는 내면에 들어갈 기회가 더 많았습니다. 만화도 그 맥락의 하나였어요.”
학교에서 혼자 조용히 앉아 일본만화 ‘드래곤볼’을 쓱쓱 그려내면 아이들은 감탄사를 질렀고 그림을 그린 연습장을 빌려보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주변의 칭찬과 인정을 거름 삼아 자란 꼬마에게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친 건 뜻밖에도 만화가 아니었다. 독일의 소설가이자 시인이었던 헤르만 헤세였다고 한다.
“만화가 제게 일상식 같은 거였다면 헤르만 헤세는 특별식이었어요.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봤었는데 1년에 한 번씩 다시 보면 새로웠죠. 고전의 좋은 점이 다시 볼 때마다 새로운 게 보이고 그게 더 이상 안보이면 졸업했다고 볼 수 있는 거잖아요. 초5 때 봤던 <데미안>이 제게는 굉장히 컸는데 <닥터 프로스트>의 테마와 비슷했던 것 같아요. 에세이와 소설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하루키도 굉장히 좋아했습니다.”
자유롭게 살기 위해 주변 어른들에게 인정받고자 마음먹은 이종범 교수는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으면서 자율학습시간에 마음껏 만화를 그렸고 만화동아리에 푹 빠져 살았던 고등학교 시절을 거쳐 연세대 심리학과 재학시절의 밴드 활동까지 그야말로 원하는 것을 만끽하며 지냈다.

만화를 최대한
오래 그리고 싶다는
꿈을 밝힌 그

우리는 우리 자신을 좀 더 알아야 한다

자신을 둘러싼 많은 것들 중에서 가장 유혹적이었던 만화가로 데뷔를 한 것은 이종범 작가가 29살 때, 자신의 이름을 알린 <닥터 프로스트> 연재를 시작한 건 31살 때였다.
어떤 얘기를 하고 싶었냐고 묻자 그가 간단명료하게 대답했다. “사람은 자기를 좀 알아야 해요. 자기에 대해 이해한다는 게 얼마나 어렵고 귀한 건지 이런 이야기를 담고 싶었어요.”
연재가 처음 시작됐을 때 이종범 작가는 심리학과 학부생들로부터 가장 비판을 많이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웹툰이 ‘대화할 때의 팔짱은 방어기재를 보여주는 거다’ ‘하반신은 가고 싶은 곳의 방향을 향한다’ 등 지극히 도식화된 심리학의 단면만을 보여준다는 이유에서였다.
“결과적으로 제가 만화를 보여주고 싶었던 사람은 심리학자나 심리학도가 아니었거든요. 심리학에 대한 오해가 있는 사람들에게 제 만화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 사람들을 유혹하는 단계가 1~3화였던 거죠. 의도적인 것이었어요. 어떤 예술가에겐 맞을 수 있는데 대중예술을 하고 싶은 저에겐 맞지 않았어요.”
독자가 늘어나자 이내 충성도가 높은 독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닥터 프로스트>를 학부생을 위한 텍스트로 쓰고 싶어 하는 전문가들도 생겨났다. 그러나 이종범 작가는 주목받는 신예작가라는 타이틀 외에 또 다른 무거운 짐을 짊어지게 됐다.
“자살한 여고생 이야기를 그릴 때 독자로부터 메일을 두세 통 받았습니다. 구체적으로 자살을 계획 중인데 이 만화의 엔딩을 보고 죽을지 말지를 결정하겠다는 거였죠. 만화가에게 그 정도 공포가 있을까요? 에피소드가 끝나고 난 뒤 구체적으로 자살을 계획했지만 한번 살아보겠다 라는 메일을 십여 통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만화의 영향력을 실감했던 도저히 잊지 못할 기억이 되었다고 한다.

일상에 대한 관찰이 자세해질수록
상상력이 커진다고 생각합니다.
저해상도인 일상에 해상도가
높은 렌즈를 들이대는 것.
저는 그게 그 어떤 상상력보다 먼저라고 봐요.

관찰하라, 그리고 상상하라

그렇다면 만화가이자 창작가로서 그에게 상상력이란 어떤 중요한 덕목 중 하나가 아닐까?
“상상력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천재적인 감정으로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내는 경우를 말하는 데 사실 그런 작가는 극소수거든요. 상상력이 좋으면 편리하죠. 배우의 마스크 같은 느낌? 그런데 못생겼다고 연기를 못하나요? 그건 아니잖아요.”라고 설명했다. 이종범 교수는 자신이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줄 수 없어도 이 질문의 필요성은 반드시 있다고 확언했다. 그리고 여기서 하나 더, 상상할 수 있는 힘에 대해 힌트를 주었다.
“일상에 대한 관찰이 자세해질수록 상상력이 커진다고 생각합니다. 저해상도인 일상에 해상도가 높은 렌즈를 들이대는 것. 저는 그게 그 어떤 상상력보다 먼저라고 봐요. 우리에게 영향을 주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건 누굴까. 이런 식으로 지켜보면 안 보이던 게 보일 거예요. 다들 다람쥐 쳇바퀴 같은 삶을 살아간다고 생각하는데 거기에 고해상도 렌즈를 다는 성의를 보인다면 우리는 좀 더 다른 면을 갖게 될 수 있을 겁니다.”
이종범 교수의 요즘 일상은 꽤나 분주하다. <닥터 프로스트 시즌 4>가 곧 시작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3년 반 동안 휴재를 거쳐 시작되는 이번 작품은 혐오성 테러를 배경으로 심리학자가 과연 그것을 어떻게 막는지가 주된 이야기가 될 것이다. 결코 쉽지 않은 주제인 만큼 스토리를 만들고 그림을 그리는 그는 당분간 만나기가 쉽지 않을 듯하다. 만화를 최대한 오래 그리고 싶다는 꿈을 밝힌 그. 이종범 작가에게 만화란 인간과 만나고 인간을 이해하며 종내에는 인간을 사랑하게 되는 구도의 여정이지 않을까.
<닥터 프로스트 시즌 4>가 기대되는 이유는 현실에 발 붙이고 선 닥터 프로스트가 우리 인간에게 어떤 질문을 던지고, 어떤 답을 얻게 하는지 그 길 안에 우리를 끌어들일 채비를 마쳤기 때문일 것이다.


산전인과 이종범 작가의 현문현답

처음 만화에 빠져들었던 계기가 궁금합니다

학생 시절에 돈이 제일 적게 드는 취미가 만화였습니다. 만화는 필기도구만 있으면 됐으니까요. 만화를 잘 그리면 쉬는 시간마다 애들이 몰려왔거든요. 다른 것에 비해서 더 많은 사람한테 어필할 수 있는 영향력이 참 컸었죠. 어린 시절에 칭찬과 관심은 매우 중요한 문제잖아요.

작가님께서 생각하시는 취미와 직업으로서의 차이가 무엇인가요?

직업이라는 건 내가 재밌어서 하는 것과는 별개라고 생각합니다. 제 만화를 보는 친구를 유심히 관찰하게 돼요. 대중들이 요구하는 반응에 따라 만화의 스토리를 고치면서 공감과 호응도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음악은 취미가 되었고 만화가는 직업이 됐습니다.

웹툰작가를 꿈꾼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마이크로 플랫폼 유저, 유튜브, 웹툰작가, 웹 소설 등의 세계는 개인이 작가가 될 수 있는 문턱을 낮추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 같아요. 개인창작 시대에 뭔가를 잘 해내기 위해서는 먼저 못해봐야 하는 것 같아요. (실패가 아니라) 못해보는 걸 빨리해봐야지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도전하시고, 해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