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시대의 에너지 기술, V2G
국내외 전력산업에서 ESS는 재생에너지와 함께 에너지산업 패러다임을 바꿔놓을 주역이며, 그 활용성은 갈수록 다양해질 것이다. ESS 등장으로 '생산→소비' 형태였던 전통 전력 유통방식이 '생산↔ESS↔소비' 형태로 유연해지고, 그 가운데 새로운 산업이 발굴되고 있다.
한 발짝 더 나아가 ‘움직이는 ESS’, 즉 전기자동차를 활용해 전력계통을 안정화하고 수익을 창출하는 V2G(Vehicle to Grid) 기술과 시장 전망, 정부 관련 정책 등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우선 V2G는 전기차와 충방전시스템에 탑재된 통신기능을 이용해 전력을 양방향으로 전송하는 기술을 말한다. 주로 전기차에 충전한 전력을 다시 꺼내 애초 전기를 가져왔던 전력계통(Grid)으로 다시 흘려보내는 방식이어서 ‘전기차 역송(逆送)’으로 부르기도 한다. ESS와 마찬가지로 배터리 내 충전전력을 필요에 따라 다시 계통에 방전함으로써 전력피크를 저감하거나 재생에너지 간헐성을 완화시키는 등의 역할을 수 행할 수 있다. 전기차를 충전할 때 배터리는 하나의 부하(Load)이지만, 반대로 방전할 땐 하나의 발전기로서 분산전원 역할을 하게 된다. 즉 V2G는 전기차를 단순한 이동수단이 아니라 언제든 사용가능한 ESS로 인식해 활용도를 더 높이고, 거기서 발생한 편익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새로운 형태의 비즈니스다.
전기차 시장, 충·방전 확산 속도에 달려있다
전기차를 ‘움직이는 ESS’로 보는 건 당연한 접근이다. 사실 내연기관차든 전기차든 대부분의 자동차는 일생의 가장 많은 시간을 주차장에서 보낸다.(영업용은 예외) 도심 일반가정용 차량의 운행시간 비율은 10%에도 못 미친다. 이 차량이 전기차라면 나머지 90%의 시간은 수송수단이 아닌 ESS로서 역할을 할 수 있다. 주차장에서 양방향 충전기와 연결되는 순간 ESS로 변신해 안정적인 전력수급 등에 기여하는 셈이다. V2G 상용화는 현재 인프라와 기술로도 구현이 가능하다. 이론적으로 전기차에 탑재된 배터리는 언제든 외부로부터 전기를 저장하거나 이렇게 저장한 전기를 방전할 수 있고, 전기차 충전기 역시 과금을 위해 이미 일정 수준의 통신기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향후 양방향 충전기 보급과 전기차 충·방전에 대한 국제 기술표준을 정립하는 일 정도만 남은 상태다.
본격적인 V2G 시장 개화는 이런 기술 문제가 아니라 전력시장 제도설계와 배터리 단가 경제성 확보가 관건이다. 한전 경제경영연구원이 최근 V2G 경제성을 분석한 바에 따르면, 전기차 배터리와 일반 ESS를 이용해 1kWh의 부하를 감축하는데 드는 비용은 전기차가 30% 가량 비싸다. 배터리 교체비는 전기차가 더 저렴하지만 아직 방전기(전기차 전력을 계통으로 역송하는 기기) 단가가 높다. 여기에 전기차를 ESS로 활용하는 동안 차량을 사용하지 못하거나 대기하는 기회비용까지 얹을 경우 V2G의 부하감축 비용은 일반 ESS의 4배를 넘어선다.
물론 앞으로 전기차가 대량 보급돼 전기차 대부분이 V2G 구역에서 원격으로 충·방전한다면, 지금보다 경제성은 크게 향상될 것이다. 법제도 아직 미비한 상태다. 전기차 충전요금은 계절과 시간대별로 차등해 책정돼 있으나 V2G 방전요금체계는 마련돼 있지 않다. 이 요금체계를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V2G 시장의 확산 속도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수많은 전기차는 V2G 기술과
만나 이동하는 ESS로서 수시로
배전망과 연결돼 지금보다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게 될 전망이다.”
미래 에너지신산업 육성을 위한 우리 정부의 노력
그렇다고 전기차 ESS 시대가 먼 곳의 이야기는 아니다. 블룸버그 뉴에너지 파이낸스(BNEF)가 펴낸 ‘2018 뉴에너지 전망’ 보고서에 의하면, ESS 배터리 가격은 2010년 이래 80% 가까이 떨어졌고 전기차 대중화에 따라 향후 지속적인 단가하락이 예상된다. 2030년까지 글로벌 신차 판매량의 약 3분의 1을 전기차가 점유하고, 이 비중은 2 050년 55%에 근접할 전망이다. 전기차 배터리 가격 하락이 전기차 수요를 한층 증가시키고, 이렇게 늘어난 전기차가 V2G 기술과 만나 새로운 시장을 형성하게 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이때 수많은 전기차는 이동하는 ESS로서 수시로 배전망과 연결돼 지금보다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게 될 전망이다.
우리 정부도 이런 V2G의 잠재력을 감안해 다양한 테스트베드 시장 조성을 계획하고 있다. 지난 6월 확정된 3차 에너지기본계획 혁신과제에 의하면, 정부는 태양광으로 생산한 전기를 ESS에 저장했다가 전기차 충전소에 판매하거나 수요 자원시장에 참여하는 모델을 2020년까지 개발할 예정이다. 또 V2G 기술 고도화와 실증, 가상발전소(VPP)등과 연계한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하고, 중장기적으론 전력시장에 전기차 방전전력을 되팔 수 있도록 하는 한편 V2H(Home), V2D(device)등의 추가 응용서비스 개발에도 힘을 쏟기로 했다. 성큼 다가온 V2G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차별화된 전략과 응용기술 확보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