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등도
고종의 의뢰로 에디슨 전기회사는 1887년 3월, 경복궁 건청궁에 우리나라 최초의 전깃불을 밝혔습니다. 이후 고종은 ‘한성전기’를 설립했고, 국내에 본격적으로 전기가 도입되기 시작했는데요. 우리나라에 처음 전기가 도입되던 시기의 이야기를 살펴봅니다.

1887년 우리나라 최초의 전기등이 켜지는 장면을 그린 작품인 ‘시등도’는 전깃불을 처음 보고 놀란 조선인들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에디슨이 백열전등을 발명한 지 8년 만의 일로, 조선에 전기가 들어온 것은 일본이나 중국보다도 2년 앞섰습니다.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을 맺은 이듬해인 1883년 양국의 우호 증진을 위해 미국으로 보빙사(사절단)가 파견되었는데요. 민영익을 전권대신(대표단장)으로 한 보빙사 일행은 서양 문명의 발전을 확인했습니다. 특히 밤에도 빛을 발하는 전등을 보고 놀라 에디슨 전기회사를 직접 견학하기도 했습니다. 보빙사 일행은 조선에 돌아와 고종에게 이 같은 경험을 보고하였고, 고종은 에디슨 전기회사에 전기등 설비를 요청하며 적극적으로 전기 도입에 나섰습니다.

미국에 도착한 보빙사 일행

뉴욕주재 조선명예총영사 프레이저가 조선주재 미국공사에게 에디슨이 조선에서 독점적으로 전기사업을 할 수 있도록 외교 노력을 해달라며 보낸 전문
보빙사로 온 민영익에 의해 뉴욕주재 조선명예총영사로 임명된 에버트 프레이저는 1884년 4월 조선주재 미국공사인 푸트에게 조선정부와의 교섭을 요청했습니다. 그 결과 그해 9월 에디슨 전기회사에 경복궁에 가설될 전등설비가 발주됐습니다. 에디슨도 조선에서의 전등 사업이 아시아 시장으로 사업 영역을 넓힐 수 있는 기회라 여겨 적극적으로 나섰습니다.
용수 공급을 위해 향원지 근처에 발전소(전기등소) 건물을 세웠고, 40마력 전동기 한 대와 이 엔진에 연결할 25kW 직류 발전기가 도입되었습니다. 백열등 약 750개를 켤 수 있는 설비로, 당시 발전기의 조립부터 전등 가설까지 모두 미국 에디슨 전기회사의 전기기사가 수행했습니다.
발전기로 물을 끌어 올려 증기기관을 돌리자 얼마 뒤 휘황찬란한 전기등이 켜졌고 지켜보던 모두를 놀라게 만들었습니다. 이 신기한 모습을 보기 위해 온갖 구실을 붙여 많은 이들이 몰려들었다고 합니다. 건청궁을 밝힌 이 빛은 고종의 개화 의지를 담은, 근대국가로 나아가기 위한 희망의 불씨였습니다.

조선에 파견된 에디슨 전기회사의 총지배인이자 기술자 프란시스 업튼이 1887년 에디슨에게 보낸 경복궁의 전등시설에 대한 보고서

건청궁 옥호루 앞 가로등
한편, 2015년 문화재청의 발굴조사를 통해 전기등소의 정확한 위치가 밝혀졌는데요. 향원지 남쪽과 영훈당 북쪽 사이에 발전시설이 설비되어 있던 전기등소, 석탄 연료를 보관하던 탄고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당시 아크등에 사용되었던 탄소봉, 유리절연체 등 관련 유물들도 출토되었습니다. 2025년에는 경복궁 내에 ‘영훈당과 등소’ 홍보관이 개관되었는데요. 이곳에서 경복궁을 밝힌 최초의 전기 점등, 경복궁 전기등소, 그 이후의 발전 등에 대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하니 경복궁에 방문할 일이 있다면 함께 둘러봐도 좋겠습니다.

전기등소 터

전기등소 출토유물(탄소봉, 유리절연체)
1898년 고종은 이근배, 김두승 두 사람의 이름으로 황실이 단독으로 출자한 ‘한성전기 주식회사’를 세워 전기 사업에 본격적으로 나섰습니다. 서대문~홍릉 간 단선 궤도를 놓고, 전기를 공급할 동대문발전소(75kW 규모)를 지어 1899년 5월부터 정식으로 전차 운행도 시작했습니다. 같은 해 8월 전등 사업 홍보를 위해 동대문발전소 주변에서 전등 20개를 밝히는 행사를 열었는데, 1만여 명의 군중이 몰릴 정도로 장안의 화제였다고 합니다. 1900년에는 길거리에 전차의 야간 운행을 위한 전등이 등장했습니다. 4월 10일, 종로네거리 인근 매표소 주변에 가로등이 점등되었고 이는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전기 점등입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4월 10일은 1966년부터 ‘전기의 날’로 지정되었습니다.)
한성전기는 1901년 6월 덕수궁에 전기를 공급한데 이어, 서울 종로와 일본인 상가가 밀집해 있던 진고개(지금의 충무로, 명동 일대)에 600여 등을 설치하고 상업전기를 공급하기도 했습니다. 1903년에는 용산구 한강변에 250kW 발전기 2대의 발전소가 건설됩니다.

동대문발전소 전경

동대문 전차 개통식 모습
그러나 한성전기의 경영을 위탁받은 미국인 콜브란의 비리, 이 문제를 둘러싼 미국과의 대립, 요동치는 국제 정세로 인해 대한제국의 전기 사업은 위기를 맞이합니다. 고종은 분쟁을 마무리하기 위해 추가 비용을 대고 콜브란과 합작 회사인 한미전기를 설립했지만, 일본의 침략 행보를 파악한 콜브란은 한미전기의 경영권을 내놓았고 이는 1909년 일본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이후 일제는 자원 수탈을 목적으로 주로 한반도 북부 지역에 수력발전소를 건설했는데요. 광복과 분단, 전쟁을 거치며 남한 지역은 극심한 전력 기근을 겪게 됩니다. 1961년 기존의 3개 전기회사를 통합하여 한국전력주식회사가 발족되었으며, 이후 발전소가 증설되며 1964년부터는 무제한 송전이 시작되었습니다. 1987년에는 전화율이 99.8%에 이르게 되었고요. 전력산업의 발전은 우리나라 경제성장의 큰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처음 전기등을 본 ‘시등도’ 속 사람들은 지금과 같은 풍경을 상상할 수 있었을까요? 우리나라의 전기 산업은 비록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등을 겪으며 많은 어려움이 있었으나, 그 시작은 고종과 에디슨 전기회사 간 계약이었습니다. 이후 경제발전과 더불어 전기산업도 성장하기 시작하였으며, 1974년 전신인 금성계전의 창립 이래 LS ELECTRIC은 끊임없는 혁신을 통해 지속적인 성장을 이뤄왔습니다. 이제 LS ELECTRIC은 국내를 넘어 세계로 뻗어 나가며 대한민국 전기산업의 역사를 새롭게 써 나가고 있습니다.